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라카와 덴노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사다히토 친왕은 당시 황태제였던 아버지 타카히토 친왕과 어머니 후지와라노 시게코(藤原茂子, 모시) 사이에서 태어났다. 17세에 타카히토 친왕이 즉위하자 황태자가 되었다. 1073년 1월 18일, [[고산죠 덴노]]가 인세이를 실시할 목적으로 사다히토에게 양위하면서 20세에 덴노가 되었고, 반년 만에 고산죠 덴노가 급사하면서 실질적인 황권을 쥐게 되었다. 즉위 이후부터 섭관가이자 실권자인 후지와라 가문의 권세를 약화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. 오토쿠 3년(1086), 병사한(1085) 황태제 사네히토 친왕 대신 8세의 타루히토 친왕(제73대 [[호리카와 덴노]])을 황태자로 내세운 다음날 양위했다. 이로써 시라카와인(白河院)에서 상황 자신이 정무를 맡는 이른바 '''[[인세이]]'''(院政, 원정)가 본격적으로 출현했다. 이후로 임명된 셋쇼(섭정)와 칸파쿠(관백)는 명목상의 존재에 가깝게 되었지만, 시라카와 상황 역시 당초부터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. 재위 당시부터의 칸파쿠였던 '''후지와라노 모로자네'''와는 협조 관계를 유지하여 친정기 및 원정 초기에는 섭관정치와 큰 차이가 없었다. 이러한 상황은 모로자네의 급사에 의한 섭관가 내부의 혼란 및 호리카와 덴노의 붕어로 어린 손자인 [[도바 덴노]]가 즉위한 것을 계기로 바뀌게 되었다. 어린 천황(도바 덴노)의 재출현과 정치적으로 미숙한 젊은 섭정('''후지와라노 타다자네''')의 등장이 시라카와 상황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짐작된다. 실권을 장악한 법황은 중하류 귀족 및 무가 출신의 신하를 임용해 전제적인 정치를 실시하다가 1129년 향년 77세의 나이로 붕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